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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즐길 수 있다면, 비정규직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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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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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함박은영 기자]

서울 소재 대학 일본어학과를 졸업한 박영미(27)씨. 그는 지난 2006년 한국산업인력공단을 통해 도쿄에 본사를 둔 대형물류업체인 'D사' 입사에 성공했다. 박씨는 사내에서 같은 나이의 사토 히로미(24·가명)씨와 친분을 쌓았다.

벌써 2년째 비정규직 신분으로 일하던 사토씨는 정규직 전향을 희망하지 않고 있었다. 비정규직이지만 정규직과 똑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오히려 업무 부담은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돈을 모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활동을 하며 사는 것이 꿈이었다.

"단순히 월급만 놓고 생각하면 어이가 없었죠."

박씨는 사토씨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업무량도 훨씬 적은 데다 책임감도 적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안정된 미래보다도 취미 활동에 더 가치를 두는 것에 가벼운 문화 충격을 느끼기까지 했다고.

박씨처럼 정규직으로 일하는 다른 일본 동료들도 한국인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업무가 끝나도 동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자신의 취미활동을 하거나 가정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정규직들 중에도 사토씨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박씨는 최근에 와서야 이들이 '프리커족'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생은 즐기는 것, 여가 위해 사는 우린 '프리커족'  

프리커(freeker)족. 영어 '프리(free)'와'워커(worker)'가 합쳐진 이 합성어를 '자유로운 노동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흔히 프리커는 1~2년간 일하며 모은 돈으로 비슷한 기간을 쉬며 여가나 취미활동을 하는 계층을 말한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단기간의 경제 활동을 계속하는 '프리타'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프리커들은 음악이나 여행 등 개인의 취미 활동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와 관련한 물질적, 시간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노후에 대한 대책 없이 취미활동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직장을 선택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높은 수입이다. 노후의 경제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취미 활동이나 풍요로운 여가를 위해 최소한의 경비를 사용하고, 일자리를 찾지 못할 때를 대비해 미리 돈을 모으는 것이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오카다 쇼코(29) 역시 프리커라 할 수 있다. 그는 한국 가수 신화의 열성팬이다. 1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한국을 방문, 신화의 콘서트장으로 향한다. 앨범이나 관련 상품을 구입하는 일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현재 정규직으로 일한다. 그러나 그는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라면 비정규직으로 옮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여기서 '좋은 조건'은 자신의 여가 활동을 위한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직장을 말한다.

프리커족들의 최대 적은, 바로 '나이'
프리커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뚜렷한 취미 활동이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돈'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음악, 여행, 요리 등 자신의 취미 활동이나 여가 생활을 풍요롭게 누리게 하는 수단에 가깝다.

실제로 일본의 블로그 중에서는 스스로 '프리커'라 밝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취미생활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각종 동호회에는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비슷한 취미 활동을 공유한다. 전국의 맛있는 라면가게 찾아가기, 지하철 노선 따라 여행하기, CF 촬영지 순례 등 취미의 범위는 넓고 다양하다.

그러나 프리커들이라고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르바이트나 파견직의 기본 임금이 높은 일본이기에 임시직만으로 생활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은 데다, 선택의 폭 또한 좁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파견 노동자나 전직이 잦은 노동자들로 인한 문제점이 늘어나면서 경험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는 프리커들의 입지를 좁게 만든다. 따라서 프리커들은 비교적 가족 부양의 부담이 적은 여성이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경향이 강하다.

▲ 일본에선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생계유지가 가능하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찾는 과정에서 임시적인 프리커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오카다 아루코(28)씨는 설계사무소에 들어가기 위해 2년 가까운 구직 기간을 가졌다. 주로 호텔이나 편의점 등 저녁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었다. 그는 현재 건축 사무소에 취업하여, 개인 사무실을 차리는 것을 목표로 일하고 있다.

오카다씨의 예처럼 여전히 대부분의 일본 젊은이들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정규직을 선호한다. 이를 위해 대학 3학년 시기부터 본격적인 취업 활동에 돌입하고 있다. 이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프리타'나 '프리커' 자체를 희망하는 이들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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